1 피터 모렐리의 영화 '프랑스의 심장박동' 촬영을 기념하는 1961년의 이브 클랭. /사진 이브 클랭 아카이브 2 이브 클랭, 'PR 3', 1962. /사진 소더비



요즘 늦가을 하늘은 붉은 단풍과 대비되며 유난히 맑고 푸르다. 그 아래 서 있으면 문득 떠오르는 예술가가 있다. 파란색 하나로 세계를 다시 그리려 했던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Yves Klein)이다. 그의 파란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고, 그의 예술은 ‘왜 파란색인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여기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있다. 1940년대 후반, 프랑 릴게임몰메가 스 남부 니스 해변. 세 명의 청년이 모래사장에 누워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훗날 각기 현대 예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폐기물과 일상의 오브제로 누보 레알리슴을 이끈 아르망(Arman), 시와 철학을 탐구한 클로드 파스칼(Claude Pascal) 그리고 파란색을 운명처럼 붙든 클랭. 그날 세 사람은 장난스럽지만, 진지한 약속을 나 모바일야마토 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캔버스에 자기 서명을 남기겠다는 것이었다. 아르망은 땅에, 파스칼은 바다에 그리고 클랭은 하늘에 자기 이름을 썼다. 하늘은 경계도, 소유도 없는 끝없이 열린 공간이다. 그렇다면 정말 클랭은 푸른 하늘을 표현하고자, 그토록 파란색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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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 - 미술 칼럼니스트，문화기획 프로듀서, 전 KBS아트비전 대표



비물질을 향해 클랭이 찾은 국제 클랭 블루클랭의 단색화는 처음부터 파란색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1940년대 말 이탈리아와 영국을 오가며 금박과 안료, 캔버스 기술을 익히며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색만으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품었지만, 이를 실현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전환점은 1953년 일본 체류였다. 유도 수련과 사찰의 고요함 속에서 그는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귀국 후 삼원색을 시험했지만, 그가 체험한 비물질적 세계에는 닿지 못했다.1956년, 그는 마침내 한 색 앞에서 멈추었다. 형태 바다이야기게임장 를 지우고 공간만 남기는 파란빛, 훗날 ‘국제 클랭 블루(IKB)’가 되는 색이었다. 클랭에게 파란색은 ‘차원이 없는 존재’이자, 물질에서 비물질로 건너가기 위한 통로였다. 그는 울트라마린의 순수한 빛을 유지하기 위해 한 색채상과 다양한 재료 조합을 실험했고, 안료의 깊이를 흐리지 않는 특수 결합 방식을 찾아 벨벳 같은 표면을 완성했다. 이 기술은 1960년 프랑스 국립산업재산연구소(INPI)에 등록되었는데, 색 자체가 아니라 울트라마린을 특정 방식으로 고정·표면화하는 기법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IKB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그렇다면 클랭은 왜 파란색에 이토록 집착했을까. 그는 하늘의 푸른빛을 현실의 색이 아니라 ‘무형의 실재’로 보았다. 그래서 ‘첼시 호텔 선언문’에서 “나는 내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증오했다. 그들이 내 가장 위대한 작품을 뚫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유머러스하게 말하기도 했다. IKB는 그가 하늘의 차원을 인간 감각 속으로 끌어오기 위해 발명한, 가장 순수한 파란색이었다.
똑같은 11점의 파란 그림, 왜 가격이 모두 달랐을까1957년 밀라노 아폴리네르 갤러리에서 공개된 파란 단색화 11점은 겉보기엔 모두 똑같았다. 78×56㎝의 캔버스, 동일한 울트라마린 안료, 같은 농도와 기법. 캔버스가 벽에서 약 20㎝ 떨어져 걸려, 빛을 머금은 채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관객은 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IKB를 마주했다.하지만 진짜 놀라움은 따로 있었다. 클랭이 똑같아 보이는 11점에 서로 다른 가격을붙여놓은 것이다. 크기도, 색도, 기법도 동일한데 왜 가격이 다를까. 관객은 당황했다.클랭의 설명은 간단했다. “겉은 같아도, 그림의 분위기와 울림은 모두 다르다.” 같은 파란색이라도 관객이 느끼는 깊이, 온도, 색의 확산, 시선의 흐름은 미묘하게 달랐다. 어떤 이는 한 작품을 더 밝게 보았고, 또 다른 이는 옆 작품을 더 차갑고 고요하게 느꼈다. 클랭은 이를 작품이 지닌 ‘보이지 않는 기운’의 차이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에게 11점은 ‘같은 그림’이 아니라, 파란색을 매개로 열린 서로 다른 세계였다. 그는 크기가 크면 비싸고, 표현이 세밀하면 값이 오른다는 기존 미술 시장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술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경험을 열어주는가’에 있다고 보았다.추상표현주의가 작가의 감정과 제스처를 드러낸다면, 클랭의 누보 레알리슴은 그 반대였다. 작가의 감정을 지우고 색만 남기는 방식이다. 그래서 같은 파란색이라도 관객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클랭이 말한 파란색의 힘이며, IKB가 단순한 단색화를 넘어 새로운 감각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3 이브 클랭, 'IKB 191', 1962. /사진 위키피디아 4 이브 클랭, 'ANT 82', 1960. /사진 이브 클랭 아카이브



몸이 붓이 되고, 움직임이 작품이 되다클랭의 유도 경험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그의 예술을 움직인 직접적 동력이었다. 그는 유도를 수련하며 몸이 회전하고 밀리고 균형을 잃고 다시 잡는 순간마다 남는 보이지 않는 궤적에 민감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유도의 움직임 끝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이 그려진다.”이 감각은 자연스럽게 그의 대표작 ‘인체측정(Anthropometries)’으로 이어졌다. 클랭은 붓을 들지 않고, 파란색 안료를 바른 모델의 몸이 캔버스에 눕고, 기대고, 스치며 흔적을 남기도록 했다. 모델의 몸은 곧 붓, 움직임은 그대로 회화가 되었다. 그가 유도를 통해 느꼈던 ‘몸이 만든 즉흥의 선’을 고스란히 예술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인체측정’은 전통적 회화라기보다 몸의 흔적을 기록하는 의식(ritual)에 가까웠다.파란 단색화가 지각의 세계를 여는 경험이었다면, ‘인체측정’은 몸이 세계와 맞닿는 순간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회화, 퍼포먼스, 몸, 공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클랭은 미래 미술의 방향을 앞서 보여주었다. 그는 회화를 캔버스 밖으로 끌어내어 미술이 ‘그리는 것’에서 ‘행하는 것’으로 확장되는길을 열었고, 퍼포먼스, 개념 미술, 행위 예술, 포스트모던 미술의 핵심 사상을 미리 실험한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이 더 이상 물건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경험·행위·상황 자체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이후 현대미술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보이지 않는 세계를 색으로 남긴 예술가클랭은 니스 하늘에서 본 무한한 파란빛과 유도를 통해 체득한 비물질의 감각을 예술 언어로 바꿔냈다. 그는 존재의 경계를 지우기 위해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색, IKB라는 ‘무한의 파란색’을 스스로 발명했다. ‘인체측정’, 텅 빔 전시, 센강에 금박을 던지는 의식까지 그의 모든 실험은 ‘보이지 않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의 증거였다.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치의 교환’ 개념은 오늘날 암호화폐의 원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시대를 앞질렀다. 34세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아내 로트라우트와 어린 아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그의 파란색은 지워지지 않았다. 클랭은 단 하나의 색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우리 안에 끝없이 열려 있음을 일깨운 예술가였다. 기자 admin@no1reel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