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이 열린 2025년 12월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2025년 12월3일이 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장 많이 올라온 것은 그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글이었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던 그 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 계엄 해제가 될 때까지 그 숨 막히던 6시간 동안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엇을 했는지를 대다수 시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복기 무료릴게임 했다. 누군가는 다급히 국회의사당 앞으로 갔고, 누군가는 마음을 졸이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양한 서사가 넘나드는 ‘민주주의’
한국방송(KBS)이 1년 동안 제작해 방송한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는 계엄 특집 방송 가운데 단연 압권이었다. 그날 국회의사당 앞에 있던 정치인부터 일반 시민까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야마토게임예시 있었는지, 그 다양하면서도 생생한 이야기를 모아 만든 방송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조각보였다. 다양하지 않다면 민주주의가 아니고, 그 다양함이 엮어지지 않으면 정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방송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서사가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보여줬다.
대표적인 몇몇 이야기를 보자. 대구에서 렌터카를 빌려 국회로 달려온 대 황금성오락실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차를 빌릴 때 기간을 3일로 했다. 계엄이 끝나든지 아니면 자기가 죽든지 이 모든 일이 3일 안에 결정될 것으로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렇게 국회의사당에서 시민들은 만났다. 31번 인터뷰에 나오는 김한민영님과 한재용님처럼 엄마와 딸이 만나기도 했다. 더구나 시민들은 맨손으로 나오지 않았다. 비상시 처치하기 위한 응급키트부터 서로 골드몽 를 돕기 위한 것들을 챙겨 나왔다.
무엇이 이들을 사랑으로 이끌었을까. 방송을 만든 제작진 노트에 그 답이 있다. 제작진은 “‘대단한 정의감’이나 ‘역사의식’을 이유로 드는 이는 드물었다”며 “마치 모르는 행인의 난처함을 돕고, 누군가의 슬픈 소식이 들려오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그리로 향하듯이, 그 밤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모이고 뭉쳤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고 말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외면하지 않고 응답한 이들.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응답한 이들이다.
방송을 보며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바로 이 ‘응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저들처럼 응답했는가. 어떤 이는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차마 가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어떤 이는 ‘설마 무슨 일이야 벌어지겠어’라는 자신의 마음이 안이했다며 아무런 일이 안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갔어야 한다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담아 그날의 자신을 ‘복기’했다.
바로 이 점에 이 방송의 서사적 완성도가 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이 다시 그날 자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하게 한다는 점이다. 방송에 나온 ‘응답한 분’들이 그 자리를 넉넉하게 깔아준다. 나도 그렇게 대단한 역사의식과 정의감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자기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것을 통해 그날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도록 국회의사당에 없던 이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준다.
그래서 이 방송을 본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용기를 낸다. 전날 크게 싸우고 헤어졌던 커플이 ‘계엄 선포’ 뉴스에 놀라 걱정돼 다급히 전화해서 함께 분노하다보니 얼떨결에 화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다음날 학생들을 학교에 오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대화를 동료 교사와 밤새 나눴다는 이야기까지 사람들은 방송을 보며 그날을 ‘현재화’했다.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여럿의 민주주의’
서사의 동시대성은 그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는 사람들이 나누고 보태면서 이어갈 때 현재의 이야기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보태고 나눌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지며 시시하고 심지어 부끄러운 에피소드도 여유롭게 끼어들 자리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의 이야기로 갱신되고 ‘우리’의 이야기로 풍성하게 전승된다. 이야기가 시민들이 소통하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보태고 나눌 말이 있는 것, 그럴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사람의 자존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인간의 존재감은 자기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보태고 나눌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질 때 생긴다.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인간은 ‘내가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가장 비참한 삶은 남들에게 보태고 나눌 말이 없는 삶이다. 위대한 이야기란 그 어떤 작은 삶이라도 끼어들어 보태고 나눌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말이 들어서게 한다는 것이다. 늘 그 자리를 차지한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목소리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하나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등장하는 무대다. 하나가 지배하는 것을 물리치기 위해 여럿이 등장한 무대가 바로 그날의 국회의사당이었으며, 그 무대에 등장한 것이 여럿으로의 민주주의라는 것을 이 프로젝트는 유감없이 보여줬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럿의 ‘무대’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말을 빌린다면 민주주의만이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세계가 성립하면 최소한 거기에는 같지 않은 존재 ‘둘’이 존재해야 한다. 세계는 그 다른 둘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것들끼리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와 다른 존재 사이의 거리이며 차이다. 세계는 차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차이에 대한 존중, 거리에 대한 감각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거리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차이를 존중할수록 여럿이 오르는 멋진 무대가 펼쳐진다. 윤석열의 계엄과 내란에 저항한 이번 ‘빛의 혁명’은 이런 무대의 연속이었다. 그날 국회의사당은 시간을 달리해 남태령에서 진화했다. 그동안 ‘정치’에서 밀려나 있던 말들이 무대에 올라왔다. 평소라면 “뭐 저런 말들이 무대에 올라와?”라고 밀쳐냈을 ‘남성 농민’들이 감사하며 감동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들으며 차이로 만들어지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경험했다. 그 세계에 서기 위해서는 “자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단의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평범한 악’



한국방송(KBS)이 제작한 12·3 비상계엄 1년 특집 다큐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의 한 장면. KBS 유튜브 갈무리





한국방송(KBS)이 제작한 12·3 비상계엄 1년 특집 다큐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의 한 장면. KBS 유튜브 갈무리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025년 11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의 속행 공판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빛의 혁명이 이끈 민주주의는 그저 다양함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차이를 존중한다는 말로 서로를 외면하고 무관심해지며 각자에게 틀어박히자는 그런 다원주의가 아니다. 빛의 혁명이 제기한 민주주의는 외면이 아니라 만남의 민주주의다. 거리를 감각하고 차이를 존중하되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경험하게 한 무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넘어서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 사건이다. 바디우는 주체가 자기를 넘어서 세계를 경험하는 이 사건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빛의 혁명은 사랑의 서사였다.
방송 제작진과 방송에 출연한 ‘평범한’ 분들이 빛나는 점은 자신들이 계엄과 내란에 사랑으로 응답한 것이 대단한 정의감이나 역사의식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방송 안에서 실제로 그렇게 서사화했다는 점이다. 물론 죽음을 각오하고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순간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기에 그들의 행동이 자신들의 말처럼 그저 평범한 것은 아니다. 응답하지 못한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희생을 각오한 숭고한 행동이다. 또한 제작진과 출연한 분들이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고 한 말에,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무력하게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한 한덕수 등 ‘평범한 악’과 비교되는 평범한 이들의 ‘위대한 선’이 작동한 원리에 대한 단초가 있다.
‘위대한’ 자들의 ‘평범한 악’은 결단의 순간 악을 행하겠다는 대단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 결단의 순간에 판단하고 그 판단에 책임지기 위해 그가 고위직에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평소에는 자기들이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고 위기의 순간 세상을 구할 영웅은 자기들밖에 없으리라는 자의식으로 충만해 있지만, 정작 그 의식이 빛을 발해야 할 결단의 순간에는 그 잘난 자‘의식’이 스르륵 꺼진다.
반면 평범한 이들의 일상은 자존감 훼손으로 가득하다. 언제든 대체되는 부품이자 소모품으로 취급되고 존재감 훼손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이 평범한 사람들 일부는 응답한다.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저분들 말처럼 대단한 역사의식이나 정의감으로 자신의 삶이 일관돼 있기에 응답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값싼 동정 같은 연민으로, 때로는 옆 사람 때문에 눈치가 보여, 때로는 미련으로 떠밀려서, 그리고 또 어떨 때는 냉정한 계산에 따라 응답한다.
평범한 시민이 사랑으로 빚어낸 ‘응답’
심지어 자의가 아니라 강제로 만들어진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그 상황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응답이라는 ‘선한 결정’을 한다. 조건과 상황은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내 의지가 개입해 상황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응답하는 ‘선한 결정’을 내린다. 더욱이 거기에 내가 홀로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사랑과 사랑을 통한 세계의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우리는 그 순간 응답하는 ‘선한 결정’을 하게 된다.
대단한 자들이 상황을 자신들이 만들어간다는 ‘자’의식으로 충만하다면, 이 평범한 이들은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저 잘난 이들이 망친 최악의 상황이기에 더욱 세계를 보좌하고 응답하는 ‘선한 결정’을 한다. 그래서 국회의사당으로 간 분들은 결코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이렇게 말한다. “다음엔 당신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2025년 12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비상계엄 해제 1주년 기억행사\'에서 당시 상황을 되새기는 미디어파사드가 본관 외벽에 투영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