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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란 말에 관성적으로 따라붙는 진부한 찬사나 감상을 걷어내고, 오직 ‘훌륭한 작품’이라는 단순하고 맑은 의미만을 건져낼 수 있다면, 이란희의 영화야말로 ‘명작’이라 불릴 만하다. 구조를 포착하는 눈, 구조와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는 개인의 삶을 다루는 지혜,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재능, 그리고 언젠가 역사가 기억할 ‘고전’의 풍모까지. 그의 영화는 이런 자질들을 두루 갖추었다. 배우였던 그가 처음 연출한 단편영화인 ‘파마’(2009)에서부터 그랬다.
이란희의 장편 데뷔작 ‘휴가’(2021)는 놀라웠다. 해고 5년차, 천막 농성 1882일째.풍력에너지관련주
정리해고 무효 소송에서 패소한 해직 노동자 재복(이봉하)은 장기 투쟁에서 휴가를 얻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덕분에 재복은 가족을 돌보고 아르바이트를 해 돈도 버는 시간을 누린다. 오랜만에 찾은 일상다운 일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그저 ‘휴가’일 뿐이다. 휴가가 끝난 뒤 재복은 다시 투쟁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의 모습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과장 에버다임 주식
없이 담담한데,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대단했다.
재복은 나무를 다루는 일을 하는 노동자이자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다. 투쟁 현장에선 함께 싸우는 동지들을 위해 밥을 한다. 집으로 돌아와선 선풍기의 날을 닦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목공소에선 청년 노동자의 곁을 챙긴다. 재복은 한국 영화에서는 잘 만나지 못한 중년, 남성, 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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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습을 그린 이유를 묻자 이란희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는 노동자라고 하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어요. 소주를 마시고 고성을 지르는, 그런 모습이죠. 그런 편견에서 벗어난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다른 모습’은 실존 인물이었던 고 임재춘 선생님으로부터 빌려왔다. 콜텍 해고 노동자로, 콜트콜텍 복직 투쟁 테마주정리
현장에서 ‘재춘 언니’라 불렸던 분이다. 다큐멘터리 ‘재춘 언니’(2022)에서 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품위를 지키는 사람.” 감독은 재복에 대해,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노동자 임재춘에 대해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품위’라는 말의 뜻을 이란희의 작품으로부터 배웠다.
‘3학년 2학기’(2025)릴게임추천사이트
도 노동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 막 일을 시작해서 노동자로서 차근차근 성장해갈 청년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역시나 명작이다.
인천의 한 직업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열아홉살 창우(유이하)는 절친 우재(양지운)와 함께 3학년 2학기를 맞아 중소기업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실습을 마치고 취직을 하게 되면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고, 병역 특례를 받을 수도 있는 조건이다. 무엇보다 혼자서 세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인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탤 수 있게 된다. 고작 “중소”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없다고 툴툴대는 우재와 달리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창우. 그러나 노동은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 게다가 공장의 곳곳에는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024년 한해에만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827명에 달했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보니, 그리고 현장실습생들이 경험하는 온갖 험악한 일들에 대한 뉴스에 익숙하다 보니, 관객들은 창우나 우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해진다. 노동 현장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서스펜스의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서스펜스란 관객에게 불안과 긴장감을 심어주며 사건의 결말을 기다리게 만드는 연출 기법이다. 호러나 스릴러에 주로 사용된다. 영화가 자아내는 서스펜스가 연출 기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만들어진다니, 현실과 텍스트의 반갑지 않은 협업 결과라 할 만하다.
물론 감독은 관객들 사이에서 만들어질 이 긴장감을 정확하게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서스펜스를 의도적으로 잡아내어 관객의 감정을 응축시키고, 종내에는 노동과 삶에 대한 생각에 머무르게 하는 것. 그것이 ‘3학년 2학기’가 세계를 다루는 방식이다. 때로 참담하지만, 반드시 참담하지만은 않은, 그 세계 말이다.
불안한 관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격증도 세개밖에 없고 내신도 안 좋”지만 “출석률은 제일 좋은” 창우는 낯선 공장 생활을 익히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하며 그렇게 노동자가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창우는 용접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가 몸으로 익힌 기술이 배신당하지 않는 세상이기를, 우리는 기도하게 된다.
코인이나 주식 투자로 돈을 번 투자 구루들이 “월급은 노예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라고 떠들 때에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이 만든 스마트폰, 노동자들이 닦은 길, 노동자들이 만든 음식, 노동자들이 배달하는 물건, 노동자들이 청소한 화장실, 노동자들이 돌보는 세상 만물 덕분에, 사회가 움직인다. 우습게 본다고 우스워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동자의 성실함을 깔보지 않고, 그렇다고 낭만화하지도 않으면서 ‘수업 출석률이 제일 좋은 창우’의 시간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 ‘3학년 2학기’의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다.



영화 스틸컷. 배급사 제공





손희정 영화평론가


손희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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