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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물 탐구 〈22〉 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은 교육이 민족의 미래임을 깨닫고 오산학교를 세워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을 양성했다. [사진 남강문화재단]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내가 후진이나 동포를 위해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저신용자환승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시킨 것입니다.”-동상 제막식에서-

이승훈 선생은 1864년 평북 정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이석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본명은 인환(寅煥)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서당에 다녔으나 10세 때 부친과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놋그릇을 파는 유기상점에 나이키직수입정품 사환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성실히 일하면서 신임을 받았고 이어 큰 상점으로 옮겨 장사 수완을 익히게 된다. 15세에 결혼하고 유기 행상을 시작해 평안도, 황해도 일대로 장사 지역을 넓혔다. 24세에는 자금을 빌려 유기 공장과 상점을 차려 성업하던중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 덕천으로 피난했고 공장은 폐허가 됐다. 전쟁 후 정주로 돌아와 공장과 상점을 저축은행등급 재건하고 무역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이뤘고 자수성가로 성공한 대실업가로서 재력과 명망을 모두 갖추게 됐다.
옥중서 읽은 기독교 서적만 수만 쪽 선생은 국내 굴지의 부호가 됐으나 일제와의 송사와 1904년 러일전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일선에서 물러나 칩거하게 된다. 이 시기에 선생은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을 읽으며 민족 문제에 관 농협 적금 이자 심을 갖게 된다. 1905년 을사늑약 후에는 자신의 진로를 고심했고, 1907년 평안도와 황해도 등 서북 지역 인사들이 조직한 애국계몽단체 ‘서우학회’에 가입했다. 이 해에 미국에서 귀국해 신민회 조직에 나섰던 도산 안창호를 만나면서 선생의 인생 여정은 대전환점을 맞게 된다. 국권 회복 운동에 투신할 결심을 한 선생은 신민회에 가입해 평안북도지회 책임을 맡 새마을금고 공제보험 았고 신식초등학교인 ‘강명의숙’을 설립하는 등 항일 민족 운동에 나섰다.
선생은 본격적인 신교육 운동을 위해 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오산은 정주에서 약 8㎞ 남쪽, 다섯 개 산에 둘러싸인 곳으로 선생은 어렵사리 향교 재산을 기부 받아 1907년 12월 24일 중학교인 오산학교를 세우고 교감을 맡아 학교 운영에 전념하게 된다. 교장은 백병원을 세운 저명한 외과의사 백인제의 당숙인 백이행이 맡도록 했다. 선생은 학생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솔선수범해 학교를 이끌어 나갔고 이광수·조만식·신채호 등이 교편을 잡았다. 1910년 제1회 졸업생 11명이 배출됐고 이 학교는 대성학교와 더불어 평안도의 대표 신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서북 지역은 일찍 기독교가 들어와 오산학교 교사와 학생들도 교인들이 다수 있었고 선생도 이즈음 신자가 됐다. 선생이 땅을 기부하고 교인들이 힘을 합쳐 오산교회를 세웠고 많은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게 됐다. 선생은 일제의 탄압을 예상해 장로교 선교사 라부열(Slacy L. Robert)을 교장으로 초청해 오산학교는 미션스쿨로서 기독교 민족 운동의 요람이 됐다. 선생은 서북 지역이 함께 민족 자본을 키우자는 관서자문론(關西資門論)을 주창하면서 1908년 평양에 최초의 근대적인 도자기 회사 ‘평양자기회사’를 세운 후 급여는 모두 오산학교에 기부했고 무역 회사와 출판 회사도 설립해 경영에 나섰다. 선생의 명망이 높아지고 서북 지역의 민족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면서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받게 된다.
경술국치 후 11월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이 황해도 안악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 체포되는 ‘안악사건’이 일어났다. 일제는 총독 암살 음모로 조작해 애국지사들을 대거 체포해 징역형을 선고했고 평북 지역 모금 담당이었던 선생은 제주도 유배 형에 처했다. 유배 중에도 신앙 생활과 교육 활동을 계속하면서 선생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즈음 서북 지역에서 신민회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항일 운동의 기운이 일어나자 일제는 신민회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1911년 9월 ‘105인 사건’을 날조한다.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조작해 전국에서 600여 명을 검거했고 선생은 제주도 유배 중 서울로 압송됐다. 일제는 잔인한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 이듬해 경성 지방법원에서 105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에서는 선생과 윤치호 등 6명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6년 형을 받은 선생은 4년 2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감옥에서도 신앙 생활에 매진했다. 52세 되던 1915년 가석방으로 풀려나자 세례를 받았고 장로로 임명된 후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신앙 생활을 이어가며 선생은 학교 발전을 위해 진력했고 1917년에는 재산을 바쳐 새 교사도 신축했다.
1919년 초 만주의 대한독립 선언서와 동경의 2·8독립 선언 발표를 전후해 국내 애국지사들도 독립 선언을 준비했고 기독교계 대표 격인 선생은 동분서주하면서 기독교계 인사들을 규합했다. 계획을 추진하던 중 천도교 측에서 거족적인 독립 선언을 위해 제휴하자는 제의를 했고 선생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을 중재했다. 이어 불교계 인사들도 가세해 3·1운동은 범민족적 만세 운동으로 출발하게 된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는 선생을 비롯해 기독교 대표 16명, 천도교 대표 15명, 불교계 대표 2명이었다. 이들은 독립선언 후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선생은 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감옥 생활 중에도 선생의 겨레 사랑은 계속 됐고 신앙 생활도 이어져 신구약 성경을 수십 번 읽었고 기독교 서적 수만 쪽을 읽었다고 한다. 선생이 구속된 후 일어난 오산학교·오산교회의 대규모 만세 시위를 진압하던 일경은 학교와 교회를 불태워 버렸다. 1922년 선생은 3년 형을 치른 후 민족 대표 33인 중 마지막으로 석방됐다. 일제가 불태운 오산학교는 폐교된 이듬해 새로 문을 열고 선생의 간청으로 조만식이 다시 교장을 맡아 학교 재건에 나섰고 교사도 신축했다.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고 믿은 선생은 서울에서 이상재·윤치호 등과 함께 민족 교육을 위한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나서 지방 순회 강연과 모금 운동을 전개했으나 좌절되고 말았다. 1924년 선생은 어려움에 빠진 동아일보 제 14대 사장에 취임해 경영 정상화에 노력한 후 고문으로 물러났다. 이 해에 제자들이 선생의 회갑을 기념해 약전(略傳)을 펴냈으나 총독부가 모두 압수·소각해 버려 아까운 기록들이 소실됐다.









1930년 이승훈 선생 서거 당시 오산고보 전경. 일제는 오산학교·오산교회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학교와 교회를 불태워버렸다. 오산학교는 재건을 거쳐 1926년 오산고보로 개교했다. [사진 독립기념관]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됐고 중등학교로 세워진 오산학교는 고등보통학교로 승격되어야 졸업생들이 진학 또는 교원 취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선생은 일제 당국을 설득하고 동포들의 기부금을 모아 재단법인을 설립해 마침내 1926년 오산고등보통학교가 개교하게 됐다.

오산학교, 서울 오산중·고교로 이어져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던 선생은 제자이자 오산고보 교사였던 함석헌을 통해 무교회주의자 모임인 ‘성서조선그룹’에 참여하게 된다.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은 무교회주의는 외형을 중시해 조직화 된 권위적 교회를 거부하고 성경 중심의 신앙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운동으로 이들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신자들만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연구했다. 선생은 이러한 활동으로 장로에서 면직됐으나 개의치 않고 스스로 택한 신앙의 길을 걸었다.









오산고등학교에 세워진 이승훈 선생 흉상. [사진 김석동]







1930년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 각계의 모금으로 학교 교정에 동상이 건립됐고 제막식 수일 후 선생은 지병인 심장병으로 쓰러져 향년 67세로 생을 마감했다. 선생은 자신을 인체 표본으로 쓰도록 시신을 학교에 기증했으나 일제의 제지로 고향에서 사회장을 치르고 오산학교 산기슭에 안장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민족적 수난 가운데에서도 미래를 위해 헌신한 선생의 일생은 우리 민족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했고 오산학교는 많은 민족 지도자들을 배출해 선생의 뜻이 후일까지 길이 이어지게 했다. 오산학교는 광복 후 북한 정권에 맞서 반공 시위를 일으켰고 1947년 교사와 학생들이 대거 월남해 1953년 부산에서 재건됐고 지금은 서울 보광동에 오산중·고등학교로 남아 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2007~2008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을 거쳐, 2011~2013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현재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가 있으며, 오랜 경제전문가로서 직장인들의 팍팍한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가성비 좋은 서울의 노포 맛집을 소개한 『한 끼 식사의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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